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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을 포기한 서커스의 코끼리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는 코끼리. 주위의 큰 천막 안에서는 서커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코끼리 발목에는 쇠사슬이 달려있고 그 쇠사슬은 그루터기에 묶여 있다. 공룡은 몹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코끼리를 설득하고 있고, 나비잠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공룡 : 너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거야.
코끼리 : 내 착각은 자유이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저 만큼 떨어져 있어 줄래?
공룡 : (코끼리의 말을 무시하고) 넌 이 쇠사슬을 끊을 수 있어. 이 힘든 서커스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나비잠 : 그만해. 저 덩치 큰 친구가 이 안락한 노비생활을 우아하게 즐기고 있는게 보이지 않아?
코끼리 : (입술을 삐죽거리며) 덩치는 크지만 나를 비난한 자를 공격할 유연한 격투기 한 동작은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걸!
나비잠 : (작위적인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앗! 너의 협박에 무서워 날개까지 덜덜 떨리는 군! (조롱하며) 하지만 쇠사슬에 묶여 있는 몸으로 보여 질 유연한 격투기에 코웃음이 먼저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군!
 
공룡 : (화난 목소리로) 어떻게 넌 이 상황에 저 코끼리를 놀릴 수 있지? 종처럼 비굴하게 묶여 시들은 채소를 넋이 빠져서 먹고 있는 모습이 가엷지도 않아?
코끼리 : (쓴 웃음을 터뜨리며) 나도 모르는 비참한 현실을 상세하게 알려줘서 고맙군!
공룡 :(당황하며) 그런 뜻이 아니야..난...단지..너를 돕고 싶었을 뿐이야.
나비잠 : (비웃으며) 심각한 박애주의자이니 네가 원하는 소원을 다 말해봐! 이뤄줄 수는 없지만 들어주는 예의는 배운 자니까!
공룡 : 쟨, 심각한 편애주의 돌연변이니까, 너에게 가까이 오면 공격해도 상관없어. 저런 자는 세상에 없어져도 어느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나비잠 : 이 우화에 폭력성을 더할 생각이야!
공룡 : 천만에! 이 정도 진행됐으면 등장인물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라는 참신한 기획이 생각났을 뿐이야!
 
코끼리 : 진정해. 마르튜스도 날 도와주려 했지만 실패했어. 그러니 너희도 이쯤에서 포기하고 돌아가 줄래? 곧 있으면 사육사가 나를 데리러 올 거야. 돌연변이 동물들을 서커스에 팔았다는 오명은 쓰고 싶지 않으니까 빨리 도망가!
 
공룡 :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로) 어렵지 않아. 넌 7톤이나 되는 무게를 가진 코끼리야! 이 까짓 쇠사슬은 부시고도 남을 힘이 충분히 있다고!
코끼리 :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난 이 쇠사슬을 끊을 힘이 없어.
나비잠 : (이마를 찌푸리며) 뭐야? 이 쇠사슬은 최첨단 나노 티라늄으로라도 만든 거야? 흔하디흔한 코끼리 한 마리를 붙잡고 있자고 코끼리보다 더 비싼 기계를 사는 멍청이가 있단 말이야?
코끼리 : 이것은 일반 쇠사슬이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비잠 : 그럼, 어딘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 있는 거야? 네가 쇠사슬을 끊는 순간 마취총을 가진 자가 나타나 너를 쏘게 되는 거지? 흥미진진한 걸. 난 이런 쫄깃쫄깃한 액션영화가 좋더라!
코끼리 : 너의 무한한 상상력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지만, 이곳에는 감시 카메라도, 근사한 사냥꾼도 없으니 안심해.
나비잠 : 뭐야? 그럼, 왜 이 하잘 것 없는 쇠사슬을 끊지 못하는 거지?
 
코끼리 :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말투로) 내가 이 쇠사슬을 끊어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
공룡 : (코끼리의 커다란 덩치와 쇠사슬을 번갈아보며)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네가 감당하고도 남는....쇠사슬로 보여.
나비잠 : (비웃듯이) 네가 그 쇠사슬을 끊고 줄넘기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너의 힘은 거대하지.
 
코끼리 : (발을 가리키며) 내 발에 상처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저 쇠사슬을 끊으려고 발버둥친 줄 알아? 어린 시절 사랑하는 부모와 찢어놓고, 밤마다 채찍질한 사육사를 벗어나기 위해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도망가려 애썼는지 아냐고?
 
공룡과 나비잠은 코끼리의 발을 바라보다 서로를 은밀하게 쳐다본다. 코끼리 발에 심각한 상처 자국은 있었지만 그것은 거의 아물어져 있었다. 매우 오래 된 상처였다.
 
공룡 : 근데....상처가 무척 오래돼 보여. 네가 몇 살 때 난 상처지?
코끼리 : 어릴 때.
나비잠 : 그게 언젠데?
코끼리 : 5살 때
공룡 : 지금은 몇 살인데?
코끼리 : 15살
나비잠 : (깜짝 놀란 목소리로) 세상에~ 넌 노안이구나!
공룡 : (나비잠을 쬐려보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코끼리를 바라보며) 사슬을 끊기 위한 노력을 10년 전에 그만뒀단 말이야?
코끼리 : 매일매일 시도했지. 그리고 매일매일 절망했고. 그러다가 어느 날 포기하게 된 거야.
 
나비잠 : 너, 그때보다 더 힘이 세고, 그때보다 더 영리해 졌어.
공룡 : 그런데 다시 쇠사슬을 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단 말이야?
코끼리 : 수많은 시간을 수많은 노력을 들여 수많은 시도를 했지. 그리고 실패한 거야. 난 체념했고, 이 처참한 현실에 적응해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매일 사육사의 매질은 끊이지 않을 테니까!
공룡 : 코끼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동물 중에 하나야,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물길도, 헤아리기도 어려운 골짜기에 숨겨놓은 먹이도 찾아낼 수 있는 동물이야. 그런데 과거 어릴 때 경험한 절망 때문에 현재의 능력을 무시하고 이런 좁은 공간에서 신세한탄에 빠져 세월을 낭비하고 있단 말이야?
 
코끼리 : (화난 목소리로) 이제까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난 시도했고, 이젠 그 시도가 실패라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야! 아주 영리하고 지혜롭게!
나비잠 : 네가 어릴 때 느낀 한계 때문에 현재의 성장한 능력을 부정하고 있단 생각은 안 들어? 거울을 봐! 어릴 때 힘은 너 발목에 감겨진 쇠사슬을 끊을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넌 그때보다 더 많은 방법으로 탈출을 계획 할 수 있을 만큼의 힘과 분별력이 생겼어.
코끼리 : 너 말처럼 코끼리는 슬기로운 동물이지. 자신의 죽은 동료의 뼈까지 알아보고, 적의 울음소리까지 구별해 낼 수 있으니까. 더욱이 우두머리 늙은 코끼리는 어린 코끼리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기 때문에 우린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 살아갈 수 있지. 그래서 포기한 거야. 내 어릴 때 경험은 나에게 이 쇠사슬을 끊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려줬으니까!
 
공룡 : (슬픈 목소리로) 코끼리의 뛰어난 재주인 기억력은...도리어 너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던 차가운 쇠사슬의 기억이 네 마음에 한계를 그어버렸으니까.
나비잠 : 마음의 한계는 육체까지 구속시켜 쇠사슬이 허락한 좁디좁은 공간까지만 움직일 수 있게 세뇌시켜 버린 거군.
공룡 : 넌, 이젠 탈출을 꿈꾸더라도 희망을 그리기보다 ‘쇠사슬’을 먼저 떠올리겠지
나비잠 :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쇠사슬은 너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가 아니라 너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그럴듯한 이유로 전락하겠지.
 
코끼리 : (슬픈 목소리로 공룡과 나비잠에게 등을 보이며) 마르튜스가 걸어온 길을 가르쳐 줬으니 그 길을 따라가 봐. 사악한 사육사는 너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공룡과 나비잠은 코끼리를 뒤로 남겨놓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나비잠 : 우린 생각보다 영리하지 않나봐.
공룡 : 왜?
나비잠 : 어릴 때 경험했던 몇 년 간의 실패가 몇 십년간의 불행으로 이어질 만큼 분별력이 없으니까. 어떻게 어릴 때 끊지 못한 쇠사슬을, 어른이 될 때도 끊지 못한다고 여기는 걸까?
공룡 : 자신의 발목에 깊게 남겨진 생채기는 뇌세포에 각인된 고통까지 떠오르게 하니까.
나비잠 : 무슨 소리야?
공룡 : 어릴수록 피폐한 고통과 깊은 체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어 시시때때로 탈출을 꿈꿀 때 마다 불안하게 달려들 테니까. 그래서 마르튜스는 옆에서 용기를 주며 우리가 성장하게 도와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어. 우리 생각보다 나약하고 어리석으니까.
 
나비잠 : 넌, 나한테 감사해야 해. 어울리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 울고 있는 너를 탈출시켜 준 것은 바로 나니까!
공룡 : 나비잠의 뛰어난 망각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지. 운 것은 너고, 도리어 티라노사우르스에게 밟혀 죽을 뻔한 것을 살려주고, 목적을 잃은 너를 인도한 것도 나였다고!
나비잠 : 젠장 건방진 게 목소리만 커서!
공룡 : 되바라진 게 자신의 잘못만 드러나면 욕설은! 어디다 어깨를 걸쳐! 저리 가!
 
공룡과 나비잠은 티격태격하며 마르튜스가 온 길을 자취를 따라갔다.
 
코끼리 쇠사슬 증후군
elephant syndrome ’Elephant Syndrome' 혹은 고의적 회피 증후군
 
서커스단에서 어린 코끼리는 이렇게 사육된다. 어릴 때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어린 힘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다. 어린 코끼리는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다. 하지만 코끼리는 자라 5~7톤까지 무게가 되어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어릴 때 기억이 쇠사살을 끊을 수 없다는 진리로 각인 돼 쇠사슬을 끊지 못한다. 
 
코끼리는 영리한 동물이다. 기억력도 뛰어나서  죽은 가족이나 동료의 뼈를 알아보고, 수백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물가도 기억하고 수십년전에 헤어진 사람을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리의 생존력 젊은 암컷이 이끄는 무리보다 늙은 암컷이 이끄는 무리의 생존율이 높다. 늙은 암컷 코끼리는 한 번 만난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모두 기억해서 나중에 마주치면 위험한 상대인지 아닌지 구별한다고 한다.
 
늙은 우두머리 암컷은 무리를 이끌기 위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 이동경로, 물가가 있는 곳, 과일을 먹을 나무가 있는 곳 우두머리의 뇌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는 어린 암컷들에게 전수되고 그중 한 마리가 후에 우두머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끼리는 재치와 지성에서 다른 모든 짐승들을 앞서는 짐승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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