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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매혹되버린 어리석은 얼룩말



 젊은 얼룩말 무리가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어수룩한 외모에 비쩍 마른 얼룩말은 다른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놀지 않고, 하인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다른 얼룩말들은 그 어수룩한 얼룩말을 불러 심부름 시키거나, 멀어지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리듯 킬킬거린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앉아 보고 있던 공룡과 나비잠. 갑자기 공룡이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나 얼룩말 무리에게 가려고 하자 나비잠이 공룡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공룡 : (몸을 일으키며 화난 목소리로) 무슨 짓이야!
나비잠 : (덤덤한 목소리로) 쓸데없는 일에 흥분하는 어리석은 자를 구해주고 있는 중이야.
공룡 : (분노를 드러내며) 넌 저 모습에 화도 안나? 벌써 저들이 저 어수룩한 얼룩말을 2시간째 가지고 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냐고!
나비잠 : (막대기로 모닥불에 구워지는 감자를 헤집으며) 슬픈 과거가 일으키는 데자뷰에 일일이 격분할 필요는 없어.
공룡 : (비웃듯이) 데자뷰? 술이라도 마신거야? 왜 혀가 이리저리 꼬여?

나비잠 : 넌, 저 멍청한 얼룩말의 모습 속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 너의 모습을 발견한 거야. 일종의 데자뷰 현상이지.
공룡 : (흥분하며) 난 쟤처럼 왕따가 아니었거든!
나비잠 : 진실은 항상 매섭게 가슴을 후려치지. 하지만 현실은 더 혹독한 법이야. 지금 저 우둔한 얼룩말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숫자의 얼룩말과 싸워야 하는지 알고나 있어?
공룡 : (비장한 목소리로) 정의는 항상 손해 보는 법이야!
나비잠 : (조롱하듯) 그게 바로 왕따 들이 우매한 일을 저지를 때 하는 변명거리지.
공룡 : (소리치며) 난 왕따가 아니었다고!

 이 때 무리 속에서 무시당하는 얼룩말이 찾아와 공손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얼룩말 : 저기요...죄송한데...제 친구들이 조용히 해 달라고 하네요.
나비잠 : (얼룩말의 말투를 흉내 내며) 저기요..죄송한데..시끄러우니까 꺼져 줄래요?
공룡 : 신경 쓰지 마. 쟤는 오만불손한 돌연변이일 뿐이야. 하지만 싸울 줄 모르는 겁쟁이기도 하지.
나비잠 : 신경 쓰지 마. 쟤는 막돼먹은 공룡일 뿐이야. 하지만 겁도 없이 아무나 시비 거는 무례한 이기도 하지.

얼룩말 : (경계하는 눈초리로 공룡을 보며) 전 싸우고 싶은 맘은 없어요. 다만 제 의견을 전달하는 것뿐이에요,
나비잠 : (피식 웃으며) 네 의견이 아니라, 저 건방진 어린 얼룩말들의 시건방진 소리겠지.
공룡 : (나비잠의 도전적인 말투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얼룩말을 위로하듯) 걱정하지 마. 우리도 너희와 싸우려는 의도는 없어. 우리가 시끄럽게 굴었다면 미안해.
얼룩말 : (머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나비잠 : (날카로운 목소리로)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 아무에게나 고개 숙이는 버릇은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무지한 행위라는 것을 몰라?
얼룩말 : (나비잠의 격한 언어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전..다만...
공룡 : (손가락으로 얼룩말의 무리를 가리키며 나비잠에게) 지금 너의 모습이 쟤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이 상처받은 얼룩말이 두려워 떠는 게 보이지 않아?

나비잠 : 저 들은 이 미련한 얼룩말을 가지고 노는 거지만, 난 진한 경험 속에 얻은 소중한 진리를 가리켜 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군!
공룡 : 언제부터 타인에게 깊은 배려와 온정을 베풀기 시작한 거지?
나비잠 : 바로 마을에서 왕따인 너를 구해 함께 여행한 것부터겠지?
공룡 : 난 왕따가 아니었다고!

 험악한 분위기로 서로를 노려보는 공룡과 나비잠에게 얼룩말이 겁이 서린 말투로 말한다.

얼룩말 :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쟤들은 저를 놀리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거예요.
나비잠 : (입술을 삐죽거리며) 낙오자들의 문제점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는 거지.
공룡 : 저들과 네가 동등한 위치라면, 왜 쟤들의 허드렛일을 불평 없이 다 해 주는 거니?
얼룩말 : (활짝 웃으며) 저 친구들이 저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죠.
공룡 : 어떤 보호?
얼룩말 : 전 쟤들과 달라요. 그래서 쟤들이 돌봐주지 않는다면 금세 포악한 맹수에게 잡혀 먹혔거나 서커스로 팔려갔을 거예요.

나비잠 : (얼룩말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얼룩말이 거기서 거기지. 넌, 줄무늬에 다이아몬드라도 박혔어?
얼룩말 :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깜짝 놀라는 목소리로) 전 그것보다 더 심각해요! 절 자세히 보세요. 뭐가 다른지 금세 눈치 채실 거예요.

 얼룩말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지만 공룡과 나비잠은 그 차이점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공룡 : 도대체 저 얼룩말들과 네가 어떻게 다르다는 거니?
얼룩말 : 세상에 정말 모르시겠어요? 쟤들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지만, 전 검은 바탕에 흰 무늬잖아요!

 얼룩말의 말에 공룡과 나비잠이 어벙한 표정을 짓는다. 공룡과 나비잠은 다른 얼룩말과 이 어수룩한 얼룩말 무늬의 차이점을 찾으려고 매섭게 관찰한다. 하지만 그 차이점을 구분할 수 없자 짜증이 난다.

나비잠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희 집에 거울 살 능력도 없어?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식한 결론은 어디에서 비롯된 거지?
공룡 : (조심스러운 말투로) 검은 바탕에 흰 무늬와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차이점은 뭐지? 사실..네 배는 희잖아. 그러면 네도 하얀 바탕에 검은 무늬 아니겠어?

얼룩말 : (웃으며) 아니에요. 자세히 설명할 할 수 없지만 아니에요.
나비잠 : (참을성 없는 목소리로) 실실 웃지 말고 똑바로 대답하라고!
얼룩말 : (겁을 먹고 재빠르게 대답한다) 사실 난 몰라요! 쟤들이 알아요!

공룡 : 네 말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아니라 검은 바탕에 흰 무늬였다는 사실을 과학적 원리도, 의학적 진단도 아닌...단지..너와 별반 다름없는 쟤들이 알려줘서 알았다는 거야?
얼룩말 : (해 맑은 미소를 지며) 네. 얼룩말의 검은 무늬는 다른 동물보다 몸체를 더 크게 보이게 해요. 하지만 전 흰 무늬기 때문에 몸체를 더 왜소하게 보이게 하죠. 쟤들이 저를 가려주지 않는다면 전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러니 쟤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은 은혜를 갚는 행위라고 할 수 있죠.

나비잠 : (비웃으며) 저들과 너의 차이점은 네 머리가 쟤들보다 텅텅 비었다는 거야!
공룡 : 한번쯤 의심은 해 봤겠지? 쟤들이 너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 해 본 적은 없어?
얼룩말 : (세차게 머리를 저으며) 그럴 리 없어요. 한 명이 아니라 저렇게 많은 자들이 똑같은 의견을 저에게 전달할 리는 없죠,

 그때 다른 얼룩말이 그들을 지나쳐 간다. 나비잠은 재빨리 그 얼룩말을 불러 물어본다.

나비잠 : 넌 쟤가 흰 바탕에 검은 무늬하고 생각하니, 검은 바탕에 흰 무늬하고 생각하니?
다른얼룩말 : (의심 없이 순진한 말투로) 당연히 검은 바탕에 흰 무늬죠.
공룡 : 어떻게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지?
다른얼룩말 : (스스럼없이 얼룩말 무리 중 한 마리를 가리키며) 쟤가 알려줬거든요.
나비잠 : 쟤는 그 차이점을 알고 있데?
다른얼룩말 : 아니요, 제는 또 저 친구가 알려줬다고 했어요.

 다른 얼룩말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묻는다는 표정으로 공룡과 나비잠을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공룡과 나비잠을 못된 적처럼 여기는 표정을 짓고, 재빠르게 도망쳐 버린다.

얼룩말 : (당당한 목소리로) 봤죠? 전 검은 바탕에 흰 무늬라고요! 이전에 마르튜스라는 자도 나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결국 난 그 거짓말쟁이를 동네에서 쫒아버렸다고요! 그러니까 당신들도 이곳에서 추방되기 전에 빨리 사라지는 게 좋을 껄요!

 얼룩말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들의 무리로 되돌아 가버린다.

나비잠 : 믿을 수 없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진리로 받아들이다니. 한번 쯤 의심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평생을 짊어져야 할 중요한 판단을 가슴과 머리가 아닌 타인의 입술로 결정지을 수 있지?
공룡 : 부귀와 권력이 있는 자가 말한다면 가능하겠지.
나비잠 : 무슨 뜻이야?
공룡 : 언젠가 마르튜스가 이야기 해 줬어. 공신력 있는 자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속에 의심을 한 순간에 지워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그리고 그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분노와 좌절은 놀라운 효과를 일으킨다고 했어. 어떤 자를 죽일 수도 있고, 어떤 자를 살릴 수도 있으며, 어떤 자를 어리석은 환상 속에 밀어 넣을 수도 있다고.
나비잠 : 그리고 그 언어는 전염병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지고, 결국은 자신이 보지 못한 거짓을 진실처럼 가슴속에 품고 타인을 난도질 하거나 무시하겠지. 저 얼룩말처럼 말이야. 무서운 세상이야. 자신도 모르게 불쾌한 속임수 빠져 누군가를 짓밟을 수 있다니..

공룡 : 우린 타인이 신뢰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면 무조건 그를 맹종하는 경향이 있어. 우리가 항상 옳은 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그들이 내미는 아름답고 경건한 말투에 현혹돼 그들이 항상 진실 된 이야기만 한다고 믿어버리지.
나비잠 : 그들의 언어는 어느새 자신의 언어가 되고, 자신의 사상이 되며, 자신의 자아가 돼 버리겠군. 자신의 판단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믿고, 누군가가 내민 절망적인 명제를 자신에게 입히고, 도전하고 극복하기보다 슬픈 낙오자가 돼 버리는 거에 익숙해지겠지. 저 얼룩말처럼.
 
공룡 : 그래서 마르튜스는 참된 진리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참된 진리를 품은 자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어. 시간과 사건에 의해 변화하는 진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를 낙인처럼 찍은 자를 섬겨야 한다고 했지. 그래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을 유린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고, 우매한 불행 속에 빠져 불운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어.

나비잠 : (얼룩말의 무리를 바라보며) 도대체 누가 저 불쌍한 얼룩말의 무늬를 잔인하게 희롱한 것일까?
공룡 : 중요한 것은 저 수많은 얼룩말들은 거짓 진리 자를 섬기고 있다는 거지. 누군가가 참된 진리를 전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자신이 믿는 거짓 실체에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겠지.
나비잠 : 거짓 선생과 거짓 지도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그마한 힘을 소유한 개개인의 변화는 불가능해.
공룡 : 그래서 신의 존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 신이 이미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할 미래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없다면.. 우린 영원히 변치 않을 잔혹한 세상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헛돌고 있을 테고, 실망과 좌절이 밀려오면 금세 죽음의 고비와 맞닥뜨릴 테니까.

나비잠 : (건방진 목소리로) 생각해보면, 난 너를 그 우둔한 왕따 세계에서 구원해준 참된 진리 자였어. 그런 의미에서 넌 나를 좀 더 존경해야 할 필요가 있어.
공룡 : 좋아. 공룡세계에서 존경의 방법이 어떻게 표현되어 지는지 아주 사랑스럽게 가르쳐주지!
나비잠 : (공룡이 점점 분노에 불타 다가오자) 젠장! 농담이었어! 저리 못가!

공룡과 나비잠은 티격태격하며 마르튜스가 지나간 자리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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