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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그림

신의 저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타인의 모멸감과 험담은 인간의 희열을 부추기고,
농후한 육체와 관능적인 열기는 인간의 정욕을 만족시키며,
허풍스러운 권력과 경박한 물욕은 인간의 야욕을 완성시키는 곳!

고매한 철학은 퇴폐한 정염 속에 불태워지고,
비장한 소신은 타락한 세상 속에 소멸되며,
순결한 영혼은 추악한 욕정 속에 더럽혀지는 곳!

비통한 환희가 인간의 죄악을 조종하고,
우울한 고뇌가 인간의 살인을 용납하며,
황량한 신의가 인간의 배신을 선동하는 곳!

그곳에 오늘 신의 저주가 내린다!

어둠이 순식간에 하늘을 물들이고
죽음의 기척이 날카로운 섬광이 되어 땅으로 곤두박질하면
끔찍한 살육의 장이 세상을 지배한다.

뜨거운 불꽃이 하늘로부터 비처럼 내리고,
유황이 매캐한 내음을 풍기며 땅속에서 솟아나면
세상은 격렬한 몸부림으로 사망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지만
신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심판은 용서를 모르는 그곳!

그곳에, 오늘 신의 저주가 내린다!
바로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글. 나비잠>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길을 떠난 아브라함(참고)과 조카 룻은 벧엘에 이르러 위기에 봉착한다. 그들이 함께 동거하기에는 땅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축 목자와 룻의 가축 목자는 자주 부딪치자 서로 다투었고 이에 깊은 염려에 빠진 아브라함은 중대한 결정을 한다. 오랫동안 신앙의 동료였던 룻과 헤어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룻에게 친족이기에 서로 다투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자신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 대신‘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말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탐욕에 길들어진 이기적인 동물이다. 타인에게 배려를 베풀어도 그 깊이는 얕고 좁다. 친절은 자신이 손해 보지 않는 한도 안에서 가능하고, 염려는 사생활이 침해당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먼저 룻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을 줬다. 룻이 더 좋은 땅을 선택해도 이에 복종할 생각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가축을 기르기 위해 기름진 땅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의 삶을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이었다.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을 소유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메마른 땅이 파릇파릇한 생명력으로 만발할 것을..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신의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망설임 없이 룻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룻은 요단지역 너머의 소돔을 선택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전해줬던 두 천사(참고)는 곧 룻이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로 출발한다. 하나님은 살인과 폭력, 잔혹과 타락이 넘실거리는 소돔과 고모라를 더 이상 인내하며 보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시키리라 결심하셨다.

 아브라함은 룻을 위해 아니, 그 곳에 살아 숨 쉬는 자들을 위해 단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멸망하지 말라고 간구했다. 그의 희원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열렬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에는 단 10명의 의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 천사가 룻의 집에 도착하자 소돔의 백성들은 룻에게 천박한 제의를 했다. ‘오늘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소돔백성들은 빛나는 용모를 지닌 외부인을 그들의 성적 노예로 주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상냥한 부탁이 아니라 잔혹한 폭력이 묻은 협박이었다.

 그들에게 삶은 욕망과 정욕이 넘실거리는 노리개였다. 처음 본 자들에게 상냥한 친절을 베풀기보다 이유 없이 그들을 유린하고 짓밟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자들이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저주를 받을 수 없었던 죄악의 한 부분이었다. 성경학자들은 최초로 ‘동성애’가 드러난 부분을 이 구절로 명명하고 있다.

 룻은 처녀인 두 딸을 줄 테니 이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한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보며 여러 해설을 드러낸다. 성경학자들은 아무리 자신의 딸을 포악한 이들에게 넘겨주리라 했겠냐 라며, 그것은 역설절인 표현이며 반어법이라고 말한다. 내 딸을 줄 정도로 소중한 손님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로 말이다. 또는 내 딸을 유린할 만큼 비천한 자가 아니라 믿으니 그만 사라져라..

 그러나 소돔의 백성들은 룻의 생명을 위협하며 외부인을 끌어내려 했다. 천사들은 문을 닫고 소돔의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이 문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천사들은 룻에게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사위와 함께 소돔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두 사위는 화려한 매력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가 하루 만에 멸망한다는 사실에 코웃음을 치고 떠나기를 거부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했던 룻조차 잠시 지체하였다는 것이다. 룻은 오랜시간동안 힘들게 모은 재산, 명예, 안락을 포기하기를 망설였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천사는 룻에게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말하고 결코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에 저주가 시작되자 룻의 아내는 뒤돌아보았고 곧 소금기둥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스운 설화처럼 여겨지지만 천사가 룻의 가족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명령한 것은 일종의 상징이었다.

 룻의 가족이 떠난 곳은 룻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안락하고 풍요로운 거주지였다. 그곳은 룻의 거대한 재산이 쌓여있고, 룻의 평화로운 안식처가 있는 곳이며, 힘들게 일궈놓은 권세가 깃들어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미련 없이 떠나야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떠했을까? 부귀와 명예를 잃을 바에는 생명을 잃어버리겠다고 주저앉았을까? 아니면  위세와 부요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쉽게 버려도 다시 얻을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했을까? 분명한 것은 룻과 두 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룻의 아내는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본 순간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신의 저주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태웠다. 성경은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고... 써 있다.

 룻의 생명은 귀한 구원을 받았지만 영원한 행복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두 딸이 어리석은 행동을 범했기 때문이다. 두 딸은 인간들이 멸하여 배필을 얻을 기회가 사라지자 후손을 남기기 위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고 동침하여 아이를 낳는다. 그녀들의 자식들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룻이 살던 시대때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모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아무리 룻이 술에 취해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나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에게 축복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유랑민이 되어 나라를 얻지 못하고 사람들에게서 천대받는 자들이 됐기 때문이다.

 성경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종말과 한 모습을 엿본 것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종말의 샘플이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죄악이 넘실거리는 추악한 세계를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태로운 일이기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자애로운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안락하고 평안하며 존귀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 지혜로운 아브라함은 그래서 망설임 없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음에 이르고, 아들인 이삭은 리브가를 얻어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얻게 된다. 그 이기적인 망나니 야곱은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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