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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얼굴 모녀 원숭이의 비애

 북적거리는 길거리. 한 쪽에서 붉은 얼굴 엄마 원숭이가 눈동자가 풀린 상태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실망한 모습으로 다시 힘없이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그 옆에는 어린 원숭이가 엄마 옆에서 널브러져 자고 있다. 보기에도 삐쩍 마른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 공룡이 배낭에서 빵을 꺼내 아이에게 주려하자 나비잠이 재빨리 낚아챈다.
 
공룡 : 이리 내! 저 어린 원숭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나비잠 : 쟨 성인인 엄마라도 있지. 우린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할 소년소녀 가장이라고!
공룡 : 살짝 봐도 알코올중독자가 뻔 한 엄마에게 뭘 바라겠어?
나비잠 :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아. 우리가 아니라도 부유한 누군가 저들을 돌봐줄 거야.
공룡 : (빈정거리며) 언제부터 너에게 낙관적인 세계관이 자리 잡은 거지?
나비잠 : (비아냥거리며) 내 것을 자기 것 마냥 타인에게 베푸는 배부른 공룡을 동행자로 선택한 순간부터?

 그때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나이 많은 붉은 얼굴 원숭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이야기한다.

얼굴붉은원숭이
: 불쌍한 모녀라네. 나눠 줄 것이 있다면 나눠 주시게.
나비잠 : (깜짝 놀라며) 뭐야! 술 취한 원숭이 쟎아!
얼굴붉은원숭이 : (지팡이로 나비잠의 머리를 치며) 버릇없는 맹랑한 돌연변이같으니라고!
나비잠 : 으악~ 무슨 짓이에요? 술 취했으면 집에 가서 얌전히 잠이라도 청하시라고요!
얼굴붉은원숭이 : (다시 지팡이로 나비잠의 머리를 치며) 나, 술 안취했거든! 이 천하에 막돼먹은 돌연변이야!
나비잠 : (지팡이를 피하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나이에 비해 너무 좋은 혈색 탓이라고 할 건가요! 도대체 이 마을에는 술 취한 원숭이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나비잠의 말에 화가 난 늙은 얼굴 붉은 원숭이가 지팡이를 험악하게 휘두르자 공룡이 재빨리 얼굴 붉은 원숭이 뒤에서 팔을 잡는다.

공룡
: 진정하세요. 교육도 상식도 예의도 없는 돌연변이는 무시하는 게 최고예요!
얼굴붉은원숭이 : (힘들어 숨을 헐떡거리며) 우린.. 원래... 얼굴이 붉은... 종족이라네.
나비잠 : 그럼, 그렇게 이야기 하면 되지, 왜 쓸데없이 지팡이는 휘두르세요?
얼굴붉은원숭이 :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저것이!
공룡 : (다시 얼굴붉은원숭이를 막으며) 진정하세요, 어르신. 저희는 저 모녀를 보고 지레짐작했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얼굴붉은원숭이 : 저 어미가 술 취한 것은 맞네.
나비잠 : 술을 맘껏 마셔도 술 취했다는 티가 안나니 음주운전하기에는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이군!
얼굴붉은원숭이 : (숨을 헐떡거리며) 내가 저 버릇없는 것을 없애도 되겠는가?
공룡 : (허리를 숙이며 심각한 목소리로) 저는 어르신을 공경하라고 배웠으니 원하시는 데로 하세요. 시체는 제가 어떻게든 감춰보도록 노력 할게요.
나비잠 : (새침하게)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하는 어른신들 덕분이죠!
얼굴붉은원숭이 : (깊은 한숨을 쉬며) 자네가 건방진 것은 사실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군.

나비잠
: (의문을 싸인 눈길을 보내며) 화가 났다 우울해졌다 하는 것은....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상이라는 것 아세요? 그것도 술 취하지 않은 얼굴 붉은 원숭이의 내력이라고 하실 건가요?
공룡 : (얼굴 붉은 원숭이를 바라보며) 싸우기를 좋아하는 돌연변이에요. 언제가 누군가에게 크게 해코지 당할지 모른다는 상상이 제 유일한 낙이죠.
얼굴붉은원숭이 : 저 어미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게야.
공룡 : (뜬금없는 얼굴붉은원숭이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아! 저 모녀요. 남편이 전쟁이라도 나간건가요?
나비잠 :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냄새를 맡으며) 바람나서 나갔는지도 모르지. 저런 여인네와 누가 살겠어? 아무리 붉은 얼굴이 종족의 장점이라고 해도 지독한 술 냄새까지 숨길 수는 없을 테니까!
얼굴붉은원숭이 : 사실이네. 저 어미는 자기 자식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온종일 술에 취해 있지.
공룡 : (아직도 기운 없이 바닥에 누워있는 어린 원숭이를 보며) 그래도 어린 자식까지 버리는 비정한 아버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못되네요.
얼굴붉은원숭이 : 아니야. 저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도 아내도 버리지 않았다네.
나비잠 : 어른신의 소망이 환상을 만들어 낸 거겠죠. 저 때 묻은 모녀의 모습은 하루 이틀 거리에서 지낸 결과가 아니게 분명해요!
공룡 : (조롱하며) 잘 씻지 않는 나비잠의 눈길은 틀린 적이 없죠!

얼굴붉은원숭이
: 처음에 남편은 자신이 있었다네. 저 술 취한 아내를 고쳐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 그가 매일 아내에게 술병을 뺏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아내를 부드럽게 설득했던 모습이 떠오르는 군.
나비잠 : 인내는 항상 격한 분노를 쌓이게 만들죠. 어리석은 소망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할 때 끈기는 살금살금 도망칠 준비를 하기 마련이거든요.
공룡 : (나비잠을 쬐려보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결실을 맺지 못할 거라는 추측은 한 번도 생의 희망을 찾아보지 못한 자의 변론일 뿐이야!
나비잠 : 순진한 공룡씨, 우리는 본능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믿고 있지. 하지만 단 한 번의 절망이 덮쳐오면 순식간에 용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돼. 그리고 가장 편하고,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해 그것에 적응하게 되는 법이지. 그게 바로 ‘포기’라는 거야.
얼굴붉은원숭이 : 맞다네. 그는 하루 이틀, 삼일..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깨닫게 됐지. 아내에게서 술병을 빼앗는다는 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술병을 빼앗긴 아내는 포악하고, 폭력적이고 우악스러웠지. 하지만 술 취한 아내는 자애롭고, 부드러웠으며 웃음기 가득 했었 다네.

나비잠
: 비록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해도 자신이 편하고, 사랑하는 자가 행복해 한다면... 아둔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죠.
얼굴붉은원숭이 :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는 평생 아내만 돌 볼 수는 없었어. 자식도 양육해야 했고, 허기진 배도 채워야만 했지. 그런데 아내에게 술병을 건네는 순간, 아내는 하루 종일 자신의 일을 사랑스럽게 마무리 지었다네. 남편을 위해 밥을 하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깨끗하게 씻겼고, 가족의 공간을 안락하게 꾸몄지. 남편은....가정의 행복을 위해 빼앗은 술병을...다시...자신의 만족을 위해 건네줄 수밖에 없었어.
공룡 : 옳지 않은 선택은 순간의 불행을 잊게 하겠지만,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어요.
나비잠 :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절망을 피하기 위해 유통기간이 확연한 약을 복용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많은 법이죠.
공룡 : 주위에 흩어진 삶의 고리들이 하나씩 그 사람을 옥죄기 시작했고, 시간은 그에게 인내보다 포기를 바라라고....설득했겠죠.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열망은...우리의 본능이니까요.

얼굴붉은원숭이
: 마르튜스도 끊임없이 그를 찾아가 다시 아내에게 술병을 빼앗으라고 권했다네. 눈앞에 뿌연 안개처럼, 감춰진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줬어. 지금 상황이 힘들고 고될 수 있겠지만 영원한 기쁨을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이 뭔가를 매순간마다 자극했지.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릇된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설복했어.
공룡 : 하지만...소용없었군요.
얼굴붉은원숭이 : 남편은 구청에 스토커로 마르튜스를 신고했지. 마르튜스는.. 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 울면서...나에게 남편을 부탁하던 마르튜스가 기억나는 군. 하지만 난 너무 늙었고, 내 불행보다 타인의 불행을....바라 볼 여유가 없었어. 그래서...끔찍한 불운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지.
공룡 : 남편이 지쳐 떠났나요? 이젠 술로는 아내를 행복한 척 하게 만들 수 없는 순간이 온 건가요?
얼굴붉은원숭이 : 세상은 생각보다 독한 술로 가득하다네. 행복한 척 하게 만들 수 있는 술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네.
나비잠 : 그럼, 어떤 비운한 일이 저 모녀에게 일어난 건가요?
얼굴붉은원숭이 : 아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술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지. 결국 남편은 수많은 일을 해야 했고, 타인이 꺼려하는 고된 직업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어. 거짓된 행복을 위해 자신을 혹사시킨 결과는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었어.

공룡
: 어르신 말씀은..남편에게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불행한 일이 생겨났다는 건가요?
얼굴붉은원숭이 : 아니... 불행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지.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술병이었지. 아내는 자신을 돌볼 능력이 없었어. 즉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자신의 가정을 안락하게 만들 수 있는 방도를 알 지 못했어. 왜냐하면 남편은 오래전에 아내가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을 단념하고, 행복한 척 할 수 있는 무기를 건네줬으니까...‘술병’이 사라진 아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지.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술병을 건네 줄 남편을 기다리는 것.... 점점...폭력적인 기운으로 가득해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배고파 쓰러지는 자신의 자식을...알아보지 못한 채 말이야.
나비잠 : 우둔한 남편은...자신이 떠나가고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될지...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게 분명하네요.
얼굴붉은원숭이 : 미래보다 현실을 중요시한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미래에 대한 의지가 아닌 현실의 안락을 종용하는 ‘술병’이었지.
공룡 : 희망찬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절념한 순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오로지 오늘의 만족이니까요.

얼굴붉은원숭이
: 가끔씩 생각해 본다네. 왜 우린 실패했고...마르튜스는 성공했을까? 그는 술병이 아니고서도 행복해지는 진리를 알고 있는 자처럼 보였거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떠한 절망에도 꿋꿋하게 견뎌낼 준비가 되 있었어.

나비잠
: (잘난 척하며)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우리처럼 젊지도 않으면서 다 죽어가는 뇌세포를 자극해봤자 수명만 재촉할 테니까요.
얼굴붉은원숭이 :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 막돼먹은 돌연변이에게 오늘 기필코 어른공경을 가르치고 말테다!
나비잠 : 아직, 팔팔한 것을 보니 100년은 더 사시겠네요!!
 
공룡과 나비잠은 얼굴붉은원숭이의 지팡이를 피해 저 멀리 도망간다.

공룡
: 거짓된 행복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린 수많은 과오를 선택하게 되는 걸까?
나비잠 : 분명한 것은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에게 뭔가를 건네받아야지만 환희에 빠질 수 있다면 우리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거야. 즉 행복을 판단 할 권리를 포기한 거지.
공룡 : 우린, 가슴속에 서늘하게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선택하지만 진리가 없다면 그것은 썩어 문드러질 소모품에 불과한 거겠지.
나비잠 : 하지만 우린....순간적인 희열에 들뜨는 것을 점점 좋아하는 민족이 되고 있어. 오랜 시간 인내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게 참된 행복이라면 그보다 비슷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을 걸?
공룡 : 만약 그 인내에 끝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가르쳐 준다면 우리의 끊기도 더 나아질까?

나비잠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인내는 생각보다 길다는 거야.
공룡 : 갑자기 뜬금없는 자아자찬은 어디에서 솟아난 거야?
나비잠 : 아무에게나 우리의 식량을 줘버리는 네를 참아내는 동행자는 많지 않을 거야.
공룡 : 아참! 그러고 보니 그 어린 붉은원숭이에게 너의 식량을 줘버렸다고 얘기했나?
나비잠 : (벌컥 화를 내며) 뭐라고? 왜 내꺼야? 네꺼를 줘야지?
공룡 : (비웃으며) 잊었어?  네 것을 자기 것 마냥 타인에게 베푸는 배부른 공룡이 바로 나라는 것을?
나비잠 : 젠장, 얘 앞에서 말도 함부로 못한다니까! 빨리 너꺼라도 이리주지 못해?
 공룡은 빵을 들고 신나게 도망가고, 그 뒤로 나비잠이 열심히 뒤쫓아 간다. 마르튜스가 지나온 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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