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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그림

요셉, 신을 철저히 짓밟고 나를 선택해요!

 

요셉, 눈을 돌리지 말고 나를 봐요!
나긋나긋한 교태가 흐르는 정욕에 묻혀,
모든 것을 잊고 싶지 않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고된 삶을 떠올려 봐요.
잔혹했던 핏줄은 애원하던 당신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천박한 지혜로 당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렸어요.

그때, 당신의 흠잡을 데 없던 신은 무엇을 했나요?

당신의 절실한 호소를 추잡한 분쟁에 묶은 채,
당신의 애타는 희망을 묵은 어둠에 감춘 채,
무기력한 능력으로 바닥모를 절망감을 안겨준 후,
황량한 손길로 비참한 나락으로 밀어뜨렸죠.

당신의 대담무쌍한 공의 신은,
거짓의 흉계에 도취되고, 금같은 복종에 만취해서
당신의 불행을 쾌락의 장난처럼 여겼을 뿐이에요.
요셉, 눈을 돌리지 말고 나를 봐요!
낮의 열기를 잔뜩 품은 관능에 묻혀
모든 것을 맡기세요.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실성한 신은
나처럼 당신의 어떠한 희원도 만족시켜주지 못해요.

그러니 요셉,
신을 철저히 짓밟고
더 이상 신이 주신 꿈이 말을 걸기 전에
부귀와 영화가 깃들은 나를 품어요!

<글. 나비잠>

요셉은 야곱과 라헬의 아들이다. 야곱은 4명의 아내에게 12명의 아들을 보았다. 야곱은 그중 라헬을 가장 사랑했다. 라헬은 야곱과 베다니를 낳고 죽었다. 야곱은 라헬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요셉에게 옯겨 다른 형제들 보다 더 많은 사랑과 편의를 주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꾸는 지혜를 주셨다. 꿈은 예언의 보고였기 때문에 요셉이 꿈을 해몽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특별히 연결을 의미한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못마땅히 여겼다. 자신의 어머니보다 더 사랑한 여인의 아들. 더욱이 자신들은 남루한 옷을 입고 양을 치며 누추한 곳에서 잠을 자는데, 요셉은 비싼 채색옷에 안락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는 사실을 견뎌 낼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을 참을 수 없게한 것은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에게 꿈에서 형들의 곡식단이,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했다고 고백했다. 형들은 요셉이 자신의 왕이 될 거냐고 비웃는다. 그리고 그 조롱은 악한 감정과 더불어 시기와 폭력을 낳게 된다.

 어느날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낸다. 형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요셉을 보며 죽이기를 꾀한다.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하자고 계획한다. 그러자 그때 첫째인 르우벤이 요셉을 구하려고 요셉을 죽이지 말자고 청한다.  단지 구덩이에 던져넣자고 말을 한 후 나중에 요셉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형제들은 르우벤이 없을 때 지나가던 애굽상인에게 요셉을 팔아버린다. 그것은 유다의 계획이었는데 그는 자신들의 손에 혈육의 피를 묻히지 말자고 설득한 것이다. 열입곱살의 요셉은 그렇게..형들에 의해...머나먼 애굽땅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생각해 보면 요셉이 철없는 아이로써 형들을 조롱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요셉이 야곱처럼 철이 없거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소년으로 묘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요셉은 자신의 꿈을 순진하게 형들에게 말할만큼..순진하고..맑은 아이가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그렇다고 르우벤과 유다가 동생을 사랑하여 보호감쌌다고 말할 수도 없다. 르우벤은 장자로써 요셉이 사라진 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서웠을테고 아버지의 신뢰가 금이 갈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자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돌아올 몫들을 미리 탐했던 것은로 보아 (아버지의 첩을 품은 것) 그는 장자의 자리에 무척 많은 미련이 있었으리라 사료되기 때문이다.

 

성경학자들은 유다에 대한 해석도 재미나게 풀어내놓고 있다. 성경에서 보면 유다의 형들은 유다에 비해 능력이 부족했음이 드러난다. 즉 장자의 싸움에서 유다의 위치는 꽤 크게 부각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르우벤에 비해 유다의 말은 아버지와 형제를 설득시키는데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요셉은...눈에 가시였을 수도 있다.

어떤 성격학자들은 유다의 자식의 죽음은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고도 한다. 다말과의 관계에서도 요셉의 피묻힌 옷으로 아버지를 속인 모습과 비교하기도 한다. 유다가 그때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추측하며 나중에 요셉의 일을 후회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의 피묻은 옷으로 요셉의 죽음을 정당화하며 야곱을 속인 일이다. 그것은 야곱이 젊었을때 했던 사기사건들(?)과 얼마나 유사한가!! 즉 야곱의 어리석은 자식들은...야곱의 죄악을 그대로 닮고 행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직도..야곱에게 깨달음을 주며 인간의 불완전한 성품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 들어간다. 하지만 요셉은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형통한 자가 되도록 하신 것이다. 현명한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요셉이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소유물의 관리를 그에게 맡긴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낯 노예에게 자신의 재산을 위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요셉은 어떻게 보면 가나안에서보다 더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행복은 보디발의 아내때문에 산산조각난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샙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를 취하기 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던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말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알고 있었을까? 보디발 아내의 청은 단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또한 그것은 안락한 삶을 다시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셉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자신이 신뢰하는 정의의 하나님은 자신을 항상 굽어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코 하나님은 자신의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요셉은 단 한명의 청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시 포기할 준비를 한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하챦은 노예가 자신을 거절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날마다 요셉에게 청했지만 요셉은 그녀를 피하고 함께 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어느날은 그녀를 피하려고 그녀가 움켜진 옷자락을 벗어 버리고 도망갔다. 보디발의 아내의 분노는 그녀를 사악한 여인으로 돌변시켰다.

 

보디발의 아내는 남편에게 노예인 요셉이 자신을 희롱하려고 했다고 고발한다. 그리고 자신이 소리치자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주장했다. 요셉은..그렇게...다시 한 번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보디발은 요셉을 옥에 가둔다. 그곳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원망할 수도 있지만 이 사건 또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더욱이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가둔 것에 대한 많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디발이 귀한 아내를 희롱한 비천한 노예를 죽이지 않고 살려줬다는 사실은 그당시에 법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디발의 분노는 요셉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숙지 못한 아내에 대한 분노였을 거라고 서술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떠나지 않았다.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간수장의 사랑을 받아 곧 옥중의 관리를 떠맡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나게 된다. 그 둘은 꿈을 꾸게 되는데 요셉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다시 복직 되리라고 그 꿈을 해석해 준다. 그리고 복직되게 되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무죄를 아뢰달라고 청하게 된다. 하지만 숲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말대로 복직되지만...요셉을 잊게 된다.. 그렇게 2년이 흐른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술 맡은 관원장에게 맡김으로써 하나님이 주실 미래를 거부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년 동안의 침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루려는 계획을 포기하시지 않고 요셉에 복을 주실 기회를 건네준다.

애굽왕 바로는 꿈으 ㄹ꾸게 된다. 일곱살찐 암소 가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에게 잡혀먹는 꿈과 무성한 일곱이삭이 가는 일곱이삭에게 먹히는 꿈이었다. 바로는 그 꿈을 해석하려 하지만 그 어떤 자도 이를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떠올랐다. 그는 바로에게 요섭에대해 이야기 했다.

요셉은 바로왕에게 일곱해 동안은 풍년이 이뤄지지만 일곱해 동안은 흉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풍년의 행복에 마냥 도취되었다가 뒤이어 오는 흉년으로인해  기근이 들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를 택해 일곱해 풍년동안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각 성읍에 쌓아두라고 권한다. 바로는 그 모든 계획을 비천한 노예 요셉에게 맡긴다. 요셉은 바로의 신임을 얻는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다.

현재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당시 꿈을 해몽하는 자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만큼 귀한자였다. 그는 미래를 풍성하게 이끌 수 있는 자이며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자였다. 애굽은 나일강 인근 외에는 모두 사막이기 때문에 나일강이 말라버리면 곧바로 죽음에 이르는 땅이 되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예언하고 이에 대비를 권하는 요셉은..... 왕보다 귀한 자였다.

무엇보다 왕은 그 예언이 요셉의 하나님에게로 부터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요셉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수십 번 꿈을 해몽하여 또다른 위험에서 나라를 건질 힘을 가진자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마치 마르지 않는 나일강처럼 말이다...

요셉의 말처럼 풍년 후에 흉년이 이어지자 애굽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모든 나라는 기근에 시달렸다. 요셉의 현명한 정책 때문에 애굽왕은 모든 땅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만큼 막대한 부를 갖게 된다. 사람들은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갈 수 밖에 없었다. 가나안에 살던 야곱의 아들 또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 요셉에게 온다.  그들은 요셉이 누군지 모르고 예전 요셉이 꿈꿨던 것처럼 요셉에게 절을 하며 식량을 구걸하게 된다.

요셉은 형제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가장하며 여러 시험을 행하게 된다. 혹자는 요셉의 얇은 인정을 나무란다. 그냥 용서하면 되는데 무엇하려 형제를 시험하는지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요셉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의 이야기다. 요셉은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 형제애를 시험했고,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평가했으며, 베냐민에게 잘해줌으로써 시기에 능한 형재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요셉은 곧 형제들이 자신을 노예로 판 그 형제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요셉을 노예로 판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노쇠함과 하나님의 징벌로써 자신의 잘잘못을 인지하고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창세기 45장 7~8절에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조로 삼으시매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을 통찰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요셉을 사용하기 위해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격게 한 것이다. 요셉으로 인해 야곱의 자녀들은 기근에 굶주리지 않고 안락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악을 통해..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요셉은..그사실을...형제들을 보는 순간...알게 된 것이다.

야곱의 형제들은 모두 애굽땅으로 이주하게 된다. 야곱은 열 두아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이때 제사장의 위치를 갖게 되는 레위지파와 요셉이 빠지게 되고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가 열두지파가 완성되게 된다. 즉 요셉은 야곱과 동급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비롯되게 된 것이다. 창세기의 끝은 그렇게 야곱의 축복과 요셉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참고로 예수그리스도는 유다지파에서 나온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그리 녹록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고된 노동이 따르는 노예가 되거나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세상을 하직하게 된 운명에 처한 상태..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선택함으로써 더 큰 복을 받게 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수많은 유혹과 죄악에서 단 한 명의 청중인 주님을 위해 옳은 길을 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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