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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을 핥는 늑대
 

  사방이 눈으로 휩싸여 있는 허연 벌판 위에 늑대 한 마리 쓰러져 있고, 그 옆에서 또 다른 늑대가 서글프게 울고 있다. 공룡은 측은한 표정으로 그 늑대를 바라보고 있고, 나비잠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고 있다.
 
나비잠 : 언제까지 시끄럽게 울어 댈 생각이야.
공룡 : 자신의 동생이 죽었어. 이 정도의 슬픔은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야?
나비잠 : 잊었어? 이곳은 언제 눈보라가 휘몰아칠지 모르는 위험한 계곡이라고! 이렇게 계속 시간을 낭비한다면 저 울음소리는 곧 살려달라는 신음 소리로 변하게 될 걸!
공룡 : 냉정한 돌연변이 같으니라고! 넌 내가 추위에 얼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게 뻔해!
나비잠 : (빈정거리는 듯 한 목소리로) 그럴 염려는 없을 걸!! 너를 단단하게 감싼 살이 그 어떤 비싼 점퍼보다 너를 포근하게 안아 줄 테니까!
공룡 : (화난 목소리로) 너도 걱정 할 필요 없을 걸? 그 끊임없이 주절대는 시건방진 입이 항상 활활 불타올라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을 테니까!
 
 공룡과 나비잠의 티격태격에 늑대는 울음을 그치고 그들을 바라본다.
늑대 : 재수 없는 나비잠의 말이 틀리지 않아. 더 이상 이곳에 머뭇거리다가는 죽음의 위기에 봉착할 거야.
나비잠 : (비아냥거리며) 흉악한 칭찬에 몸들 바를 모르겠군!
공룡 : 도대체 그 주체할 수 없는 비아냥거림은 가실 줄을 모를까?
나비잠 : 도대체 그 주체할 수 없는 잘난 척은 가실 줄을 모를까?
늑대 : 피범벅 된 동생의 사체를 치우는 걸 도와준다면, 너희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해 줄게.
나비잠 : (조롱하며)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아는 자이군! 배신으로 서로의 등을 후려치기 전에 계약서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니야?
공룡 : 저 사체처럼 피범벅 되고 싶지 않다면 슬픔에 빠진 늑대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걸!
 
나비잠 : (피 범벅된 늑대 동생의 사체를 바라보며) 도대체 이 피범벅이 우리 우화에 가당키라도 해? 언제부터 이 순수한 우화가 주체성을 잃고 피투성이의 호러로 변질 된 거야?
공룡 : 죽은 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비잠 : (코를 움켜잡고)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군! 혹시 이 얼음세계에 흡혈귀라고 살고 있는 거야? 흥행을 노리는 능력 없는 작가의 몸부림이 뼛속까지 느껴지는 군!
 
늑대 : 창에 의해 죽은 거야.
나비잠 : 인간세계에서 새로운 무기라도 창조한 거야? 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어!
늑대 : 인간이 휘두른 창에 맞은 게 아니야.
나비잠 : 그럼, 요즘 늑대들은 서로 이빨과 발톱대신 인간의 창으로 시합이라고 하는 거야?
공룡 : 넌 정말, 예의가 없구나! 어떻게 죽은 자 앞에서 함부로 지껄일 수 있지?
나비잠 : 인간처럼 진화된 늑대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는 게 안 보여?
공룡 : 안 보여! 하지만 동생을 잃은 늑대의 발톱이 너를 향하는 것은 확실히 보이지!
늑대 : 걱정 마! 먹이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 황량한 벌판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비잠 : (비웃으며) 현명한 늑대군! 너 동생도 너만큼의 지혜가 있다면 허무하게 삶을 끝내지는 않았겠지!
공룡 : (늑대에게) 신경 쓰지 마. 입이 쓰레기라 나오는 말도 부패한 언어로 가득한 자야. 악취가 날지도 모르니까 10m의 거리는 유지하는 게 좋아.
늑대 : 항상 동생에게 경고했지. 간악한 인간의 술수에 생각 없이 덤벼들지 말라고.
나비잠 :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는 지혜로운 충고도 시끄러운 잔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공룡 : 인간이 너 동생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늑대 : 굶주림에 방황하는 동생을 상냥하게 식사에 초대했지
나비잠 : 단 한 번의 공격으로도 수많은 피를 흘릴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쥔 채 말이지?
늑대 : 친절한 인간은 편안한 동생의 식사를 위해 자리를 피해줬어.
나비잠 : (호기심에 눈을 반짝 거리며) 그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덫을 놓은 거구나?
늑대 : 덫은 맞는데, 어린아이라도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덫이지
나비잠 : 뭐야? 처절한 미련함 때문에 덧없는 죽음을 선택했다는 거야?
공룡 : 어째 너의 아슬아슬한 미래와 겹쳐지는 군!
 
늑대 : 이 끝나지 않는 눈보라와 추위 덕분에 인간은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없지. 그래서 영리한 인간은 재미있는 방법을 간구해 냈어.
공룡 : 그게 뭔데?
늑대 : 날카로운 창날에 가축의 피를 묻히고 차가운 바람에 얼리는 거지. 그렇게 몇 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창날에는 피 고드름이 엉키게 되지.
나비잠 : 그럼, 이 낭장 한 피는 가축의 피였군.
 
늑대 : 그렇지 않아. 인간이 창을 거꾸로 바닥에 꽂아두고 사라지면 추운 날씨에 먹이를 구하지 못한 짐승들은 이 창 끝에 배인 피 냄새에 몰려들어.
공룡 :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혹시...날카로운 칼날에 혀를 댄다는 것은 아니겠지?
늑대 : 두터운 피 고드름 때문에 날카로운 칼날은 보이지 않고, 허기진 늑대의 배고픔은 이성을 마비시키지. 시간이 지나 칼날에 얼려놓은 피는 다 핥아 먹었지만 살짝 드러나 칼날에 자신의 혀가 갈라지는 것은 깨닫지 못하지.
나비잠 : 말도 안 돼! 어떻게 뾰족한 칼날에 배인 혀의 고통을 느끼지 못할 수 있어?
늑대 : 차가운 얼음에..혀가 마비되면 쓰라림도 자각하지 못하는 법이야. 결국 늑대는 자신의 피 인지도 모르고 허기가 사라질 때까지 햝아 먹고.....또...햝아먹게 되.
 
공룡 : 결국... 늑대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게 되는 구나..
나비잠 : 스스로가...스스로를 죽이게 되는 거군...그것도 자신이 왜 죽어 가는지도 모른 채..
늑대 : 마르튜스는 우리 종족에게 에스키모의 사냥 법을 수없이 경고했지만, 기아의 고통은 쌓아둔 지식을 파괴시키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하지.
나비잠 : 피 고드름으로 범벅된 ‘위험’은 드러나지 않은 채 동생을 교묘하게 유혹했구나.
공룡 :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눈앞에 다가온 손쉬운 방법에 손을 내미는 법이지.
나비잠 : 그리고 서서히 그 위태로운 마력에 중독되면 벗어날 수 없게 되겠지.
 
늑대 : 어쩌면 동생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마르튜스의 훈계는 끊이지 않고 우리 주위를 맴돌았으니까.
공룡 : 자신이 감당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조금만 허기를 해결하면, 날카로운 칼날이 드러나기 전에 멈출 수 있다고 자신했겠지.
나비잠 : 우린, 결코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을 제어 할 수 없고, 원초적인 탐욕을 정복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지.
공룡 : 위기에 처하면 본능적인 감성은 빛을 발하고, 지성은 야욕에 의해 지배당하고, 의지는 노리개처럼 농락당하게 되겠지. 그리고 환멸이 가득한 중독에 깊게 빠져 더 이상 ‘진리’를 바라 볼 수 없게 될 거야.
 
늑대 : 고마워. 덕분에 동생의 시체를 배고픈 짐승에게 바치지 않아도 됐어, 눈보라가 치기 전에 저 산을 넘어가면 너희가 말한 마르튜스 흔적에 가까이가게 될 거야.
 
 늑대는 동생의 무덤을 함께 만들어 준 공룡과 나비잠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사라졌다.
 
나비잠 : 썩은 내가 진동한 음산한 타락은 유혹적인 옷과 달콤한 향수를 뿌리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법이야. 우린 그것을 어떻게 분별하여 피할 수 있을까?
공룡 : 마르튜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어. 자신의 절망이 코앞으로 다가올지라도 진리가 담긴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지혜를 쌓아야 한다고 했어.
나비잠 :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좀비처럼 타락한 세상의 물욕에 익숙해진 자들이 일그러진 황홀에서 용이하게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해?
공룡 : 그래서 마르튜스는 자신보다 더 우월한 자를 찾았다고 했어. 유혹에 쉽게 빠지는 자신을 항상 지켜 줄 수 있는 자에게 자신을 의탁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에게 맑은 진리를 배워 지혜를 쌓는다고 했지.
 
나비잠 : 우린 너무 약해빠진 존재인데 훈련받는다고 왜곡된 영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공룡 : 내 말을 오해하지 마. 마르튜스는 너 말처럼 자신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퇴폐적인 유혹을 견디어 낼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어. 그래서 자신의 눈길을...그 관능적인 매혹에서 우월한 자에게 돌린다고 했어. 그리고 그 분이 자신의 눈길을 다른 곳에 향하지 않게 잡아주기를 바란다고 했지. 어떻게 보면 마르튜스에게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깃듯 목표를 주고 그 이외는 바라보지 않는 연습을 하게했는지 도 모르지. 자신만 바라보게 한 후 마이야.
 
나비잠 : (머리를 흔들며) 머리아파, 머리 아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공룡 : 드디어 허기가 너 뇌세포를 공격한 거군! 어떻게 진지한 이야기를 5분도 못해!
나비잠 : 너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소리는 배경음악이냐?
공룡 : 어딜 못 배운 너와 나를 한통속으로 묶는 거야! 원초적인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고, 그것은 교육에 의해 가능해! 
나비잠 : (어둡고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좋아~~ 원초적인 감정을 조절하기 못한 못 배운 내가 공룡을 잡아먹는 장면을 한 번 연출해 볼까~~
공룡 : 왜 이래 농담이야! 진담과 농담도 구별 못해? 이래서 못 배웠다는 말을 하는 거야! 저리 가라니까!
 
 공룡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을 쫓아오는 나비잠을 뒤로 두고 하얀 눈 위를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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