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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가시가 된 고슴도치
 

 
깊은 숲속,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있다. 딸 고슴도치는 한껏 가시를 세우고 아빠 고슴도치에게 대들고 있다. 누가 봐도 딸 고슴도치는 무척 화가 나있다. 딸 고슴도치의 격양된 행동이 아빠 고슴도치의 살을 찌르자, 옆에 서 있던 공룡이 비명을 질렀다.
 
공룡 : 제발, 그만해! 그러다가 119를 불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
나비잠 : (흥미로운 목소리로) 내버려둬! 피 묻은 친족살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 아니야!
공룡 : 지금 제 정신이야? 저러다가 아빠 고슴도치가 죽기라도 하면 저 딸 고슴도치는 평생 감옥에서 후회하며 살아가게 될 거야!
나비잠 : (생각하는 척) 그래? 그럼, 촬영해서 인터넷에라도 올릴까? 그래야 나중에 눈물 흘리며 후회하는 딸의 완벽한 다큐멘터리를 완성시킬 수 있을 테니까.
공룡 : (화를 내며) 이게 농담으로 얼버무릴 만큼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으로 보여?
나비잠 : (단조로운 목소리로) 흥분하지 마. 저 뾰족한 가시가 보이지 않아? 아빠 고슴도치도 참을 만큼 참게 되면 자신의 무기를 맘껏 휘두르게 될 거야. 흥미진진한 장면은 이제부터 시작인 거야.
공룡 : (빈정거리듯) 팝콘이라도 사다 줄까?
 
순간, 딸 고슴도치가 살기 띤 눈길로 공룡과 나비잠을 쬐려본다. 순간 당황한 공룡과 나비잠은 움찔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비잠 : 워, 워 진정해. 살해와 폭력이 즐비한 비극적 영화를 찍기 전에 어둡고 암울한 감옥을 상상해 봐. 우린 너그러운 나그네가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힌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고발하고 말거야!
공룡 : (어이없다는 듯이) 그게 협박이지, 설득이야?
나비잠 : 살인무기를 갖고 있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흉악무도한 위협이라고!
 
분노에 휩싸인 딸 고슴도치가 방해꾼인 공룡과 나비잠에게 다가가려하자 아빠 고슴도치가 앞을 가로 막는다. 딸 고슴도치는 아빠 고슴도치를 세게 치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아빠 고슴도치는 딸의 가시에 찔려 뒤로 넘어진다. 공룡은 재빨리 아빠 고슴도치에게 달려가 상처를 살핀다.
 
공룡 :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괜찮아요? 구급차라도 부를까요?
아빠고슴도치 : 괜찮네. 괜스레 일이 커지면 경찰이 들이닥칠 거야.
나비잠 : (조롱하듯) 포악한 딸로 키우기 전에 올바른 예의를 가르쳐 볼 생각은 안했어요?
 
공룡 : 신경 쓰지 마세요. 겁은 많으면서 타인의 결점은 난도질하기를 좋아하는 돌연변이에요. 어린 시절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병이니 무시해도 돼요.
나비잠 : 겁은 많으면서 여기저기 아는 척하는 어린 부르주아에요. 어린 시절 허영뿐이 배운 게 없어서 그러니 무시하세요.
 
아빠고슴도치 : (서로를 노려보는 공룡과 나비잠을 바라보며) 나 때문에 싸우지 말게. 나비잠의 말이 맞네. 내 딸이 저렇게 사나운 자로 자라난 것은 모두 내 탓일세.
공룡 : 모든 아버지가 완벽한 딸을 키울 수는 없어요.
아빠고슴도치 : (슬프게 고개를 저으며) 그런 뜻이 아니네. 난 정말...극악무도한 아버지였다네.
나비잠 : (혼자 중얼거리며) 슬픈 아버지 역할은 우리에게 하지 말고, 딸이 감옥에 가면 카메라 앞에서 하라고요!
 
아빠고슴도치 : (물기 묻은 목소리로) 난 너무 어릴 때 가족을 만들었어. 그래서 내 가족이 내 미래를 망쳤다고 여겼네. 매일 고단한 노동에 매여 내 젊은 시절이 사라지는 게 끔찍했지. 그때부터 였어. 내 가시가 내 아내와 딸에게 향한 건...
공룡 : (놀란 표정으로)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딸보다 당신이 먼저였군요.
나비잠 : (빈정거리며) 딸은 아버지가 흘린 폭력의 가시를 자신의 몸에 꽂은 거네요.
 
아빠고슴도치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내는 병들어 죽었고, 딸은 차갑고 모진 고슴도치가 됐지. 난 딸의 모습을 보고 후회하고 후회했네. 그리고 결심했지, 내가 흘린 악독한 가시를 제 가시인 양 꽂은 딸에게 자신의 숨겨진 따뜻한 가시를 드러내라고 설득하기로. 그래서 매일...딸의 가시에 찔리게 된 거지.
 
나비잠 : 당신은 한 가지 잊었나 본데, 당신에게도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요. 당신이 딸에게 가까이 갈수록 딸의 가시만 당신에게 예리한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당신 또한 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있는 거라고요.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아빠고슴도치 : 알고 있다네. 지금 딸은 당황하고 있겠지. 차라리 예전처럼 자신을 무시하기를 바랄거야. 아니 차라리 내가 죽은 사람처럼 사라지기를 원하겠지.
공룡 : 그러면, 당신의 딸은 매일 당신에 대한 증오를 가시 속에 숨기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들에게 독을 묻혀 찌르겠죠.
나비잠 : 결국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자들은 줄어들 테고, 딸은 상처받지도, 상처주지도 않는 거리를 만들어 그들을 외면하겠죠.
공룡 :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랑받지 못한 자들은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아빠고슴도치 : 고슴도치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가시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서로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 하지만 그것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프로그램 된 차가운 본능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한 애정의 계획이지. 그리고 그 사랑의 거리는 부모에게 배우는 거야.
나비잠 : (입술을 삐죽거리며) 하지만 당신은 딸에게 애정보다 폭력을 가르쳤죠.
공룡 : 결국, 딸에게 고슴도치의 적당한 거리는 증오를 숨기기 위한 안전한 피신처가 된 거군요.
 
아빠고슴도치 : 언젠가 이 끝이 없는 싸움에 치쳐 갈 때 마르튜스를 만났다네. 마르튜스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에게 실망했냐고 물어보더군. 난 솔직히 피곤하고 고달프다고 대답했지. 마르튜스는 왜냐고 물었어. 그래서 난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딸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상상에 이 헛된 노력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
 
공룡과 나비잠 : 마르튜스는 뭐라고 말했죠?
 
아빠고슴도치 : 웃으면서 재미있다고 했어.
나비잠 : 무슨 뚱딴지같은 대답이죠?
 
아빠고슴도치 : 마르튜스는 이렇게 말했어. 만약 나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던 원수가 있다고 치세. 난 그 때문에 수많은 재물을 잃고 피폐해졌지만 그 원수를 원망하고 증오하기보다 사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하세.
나비잠 : (입술을 삐죽거리며) 뜬금없는 산중대답은 마르튜스의 특기죠!
아빠고슴도치 : 그리고 마르듀스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지. 그럼, 결국 내 사랑 때문에 그 원수도 나를 사랑하게 될까?
공룡과 나비잠 : ........
 
공룡 :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드라마나 동화에서는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맹독성을 가졌죠.
 
아빠고슴도치 : 맞네. 내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원수 또한 언젠가 나를 사랑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행하는 결정은 아닌 거야. 그것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내가 더 나은 자가 되기 위한 내 결심인 거지.
나비잠 : 하지만 우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이 상대를 변화시킬 거라는 턱없는 추측을 하게 되죠. 그래서 원수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더 짓밟으면 실망하며 인내를 잃고 포기하게 되는 법이지.
공룡 : 중요한 것은 딸이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당신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거군요.
 
아빠고슴도치 : 딸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딸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내가 내 딸의 가시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자 ‘진실’이기 때문이지.
 
나비잠 : 지칠 수도 있어요.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폭력과 폭언은 비참함을 부채질 할 테니까요.
아빠고슴도치 : 그럼 다시 마르튜스가 한 말을 되씹어야 하겠지. 언젠가 마르튜스는 그 누군가가 비틀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었다고 했어. 죽어가면서까지...
공룡 : 나도 알아요. 마르튜스는 그 분 때문에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했어요.
 
나비잠 : 지나가버린 추억은 관심 없어.
공룡 : (조롱하듯) 나비잠의 깊은 관심이 갑자기 시들어진다는 것은 배고파진다는 뜻이지.
 
아빠고슴도치 : 미안하네.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 놓았군, (쪽지를 건네주며) 마르튜스는 이곳을 지나 왔다고 했어. 그곳에 가면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네. 난 딸이 다른 이에게 가시를 꽂기 전에 말려야 하니 먼저 가겠네..
 
공룡과 나비잠은 아빠고슴도치가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비잠 : 가능한 일리까?
공룡 : 뭐가?
나비잠 : 사실 저 고슴도치는 부모이기 때문에 딸에게 끝없는 인내와 수고를 베풀겠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내가 선한 마음으로 다가갈 때마다 원수는 혐오감을 가득 안은 채 나를 비웃고, 내 육체를 가격하겠지.
공룡 : 버리면 돼.
나비잠 : 뭐를?
공룡 : 내가 베풀면 원수도 나를 사랑할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지, 원수가 나를 사랑해 주기 원해서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고파는 장사꾼의 이익과 별반 다름없어.
 
나비잠 : 그 누가 의미 없는 짝사랑을 혐오와 폭력 속에서 이어 가겠어?
공룡 : 영리한 여우는 수많은 전략으로 고슴도치를 이기려고 하지만 고슴도치는 승리하는 방법을 딱 한 가지만 알고 있는 법이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수비하는 법이지.
나비잠 : (눈살을 찌푸리며) 원수와 처절하게 피 흘리는 싸움을 준비하라는 말이야?
공룡 :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들며) 너에게 은유법을 쓴 내가 잘못이지! 저 아빠고슴도치의 유일한 방법은 딸을 사랑할 거라는 확신에 찬 결심뿐이 없다는 거야. 다른 방법은 선택할 이유도 생각할 기회도 없다는 거야.
나비잠 : (새치름한 목소리로) 매번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며 원수를 포옹하는 자가 얼마나 있겠어?
공룡 : 예전에 마르튜스도 그런 자를 알고 있다고 했지.
 
나비잠 :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고 보니 나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공룡 : 누구?
나비잠 : ‘나!’ 폭력과 폭언 속에서, 심지어 멍청하다는 말을 듣고도 인내하며 너를 포기하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난....절대적 선한자임에 틀림없어!
공룡 : 내가 요즘 너에게 너무 잘 대해줬지? 한 번 포기하게 만들어 줘?
나비잠 : 젠장, 저리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공룡과 나비잠은 티격태격하며 마르튜스의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난다.
 
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 딜레마란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몸을 기대어 서로 온기를 나누려하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서로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추운에 빠지는 딜레마를 가리킨다.
 
이 말은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하면, 자신의 가시 때문에 상대를 다치게 한다고 여겨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즉 타인과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가 자신을 상처 입힐 것 같아 자신이 먼저 타인에게 상처 입혀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누군가가 적당한 거리를 가리켜 주기 전까지는 추위에 떨 수밖에 없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비유한 심리학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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