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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으로 공포를 이기려는 딱따구리
 

  숲 속. 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헬멧을 만들고 있다. 딱따구리는 헬멧 안에 스폰지, 솜, 나뭇잎 등등 여러 가지 부드러운 소재의 부자재를 하나씩 넣고 머리에 썼다가 다시 벗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공룡은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고, 나비잠은 한껏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비잠 : (조롱하는 어투로) 어디 그거로 만족스럽겠어? 인터넷으로 최신식 나노 소재를 이용한 충격완화제를 사지 그래?
딱따구리 :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말, 그런 게 있어?
나비잠 : (놀리는 어투로) 뉴스도 안 봐? 최신 유행 바지에는 TV가 달려 나오는 시대라고!
공룡 : (온화한 눈길로 딱따구리를 바라보며) 나비잠의 미련한 말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어. 유식한 척은 있는 데로 하는 골치 아픈 돌연변이니까.
나비잠 : 난 그래도 저 멍청한 딱따구리처럼 자신의 머리를 보호한다고 헬멧을 만드는 주책은 떨지 않아!
공룡 : (딱따구리에게 윙크를 하며) 아참, 예의 없는 척도 일종의 매력으로 여기는 돌연변이니까 너무 상처 입지는 마. 참기 어려우면 욕설을 내뱉어도 돼. 험한 입에 비해 속은 겁쟁이라 덤비지도 못해.
딱따구리 : (공룡에 귀에 대고) 혹시..이상한 약을 먹니? 난 그런 자와 얽이는 건 싫은데.
나비잠 : (큰 소리로) 이상한 약은 먹지 않지만, 가끔 내 욕을 하는 자들의 귀는 물어뜯어 모으는 취미는 있지.
 
나비잠이 말에 딱따구리는 재빨리 제 양쪽 귀에 손을 올려 감춘다.
 
공룡 : 놀라지마. 네가 헬멧을 만드니까 괜스레 놀리고 싶은 거야.
딱따구리 : (눈살을 찌푸리며) 왜 헬멧을 만드는 게 놀림감이 되지?
공룡 : (당연하다는 듯) 넌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잖아.
딱따구리 :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맞아. 그래서 헬멧을 만들고 있는 거야. 나무를 쪼는 것은 뇌진탕에 걸릴 위험이 많거든.
공룡 : (난감한 어투로) 딱따구리는 뇌 사이에 일종의 충격흡수 스펀지 장치가 있잖아. 그게 너희가 매일 나무를 쪼아도 살아남는 이유 아니야?
나비잠 : 매일 나무만 쪼다보니, 나무가 자신을 쪼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 거지. 그래서 사나운 나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망각에 빠진 게 틀림없어. 헬멧을 만들기보다 정신병원에 먼저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
 
딱따구리 : (벌컥 화를 내며)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거야?
나비잠 : (조롱하며) 혹시 나무가 벌거벗고 너에게 달려들지는 않던? 자신의 옷을 맘대로 벗겨 간지럽다고 애교를 떨지는 않아?
공룡 : 그만해! 어떻게 상상하는 것 마다 그렇게 천박할 수 있지?
나비잠 : (빈정거리며) 내 요염한 상상력은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딱따구리 : 어떻게 확신하지?
공룡과 나비잠 : 뭘?
딱따구리 : 내가 아무리 나무를 쪼아도 뇌진탕에 걸려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 말이야.
공룡 : 지식은 사방에 널려 있어. 딱따구리는 스폰지 형태의 두꺼운 두개골이 뇌를 보호하는 데다 나무를 쪼기 1000분의 1초 전에 눈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한다고 알려졌어.
딱따구리 : 하지만 만약 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야.
 
나비잠 : 만약?
딱따구리 : 나무를 정확히 직각으로 쪼지 않는다면 우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하지만 매번 틀리지 않는 정확한 각도로 나무를 쫀다는 것을 어떻게 장담 할 수 있지?
공룡 : 넌 인간이 만든 실수투성이의 기계가 아니야. 실패의 확률을 계산기로 두들기며 살아갈 필요가 없는 존재야!
딱따구리 : 우리의 뇌는 뇌수 없이 두개골로만 이뤄져 있고, 부리와 두개골이 스프링처럼 탄력 있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만약 뇌수가 점점 증가한다면 어떻게 하지? 연결된 부리와 두개골의 탄력성이 떨어져 늘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짐작해 봤어?
 
나비잠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세월을 낭비하겠다는 거야?
 
딱따구리 :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결국 내 부리는 부서지고, 두개골은 균열이 생기며 뇌는 두부처럼 뭉개지고 말거야.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아? 그러니 내가 헬멧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거야.
공룡 : 수많은 너의 조상은 너처럼 이런 것을 고민하며 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어.
딱따구리 :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내가 다른 이보다 예민하다고 비난할 생각이야?
 
나비잠 : 본인이 예민한 것과 우둔한 것을 분별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딱따구리 : 내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발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말이야?
 
공룡 : 넌, 지금 고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어.
나비잠 : 그것도 불필요한 문제에 매달려 끊임없는 불안에 빠져있지.
공룡 : 자연이 너에게 준 축복을 의심하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워하며 결국.. 심각한 ‘공포’에 빠져버린 거야.
나비잠 : 너의 절박한 문제는 너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거지.
공룡 : 넌 모든 딱따구리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장점을 단점으로 결론짓고 무의미한 주제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나비잠 : 결국 다른 딱따구리들보다 뒤쳐져 서성거리다가 아무것도 쥐지 못한 미래를 그리워하며 또 다른 불안에 빠지겠지.
 
딱따구리 : 지금 마르튜스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에 어리석게 빠져 도태되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나비잠 : 우리가 우리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거야.
딱따구리 :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보호일 뿐이야, 평생 두려움 없이 사는 자들이 얼마나 무모하게 살아가는지 몰라서 그래?
공룡 : 너에게 있는 두려움은 형체가 없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야.
나비잠 : 마치 언젠가는 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빠진 자처럼 열심히 나무를 쪼아 살아가는 딱따구리들의 미래에 의심을 쌓고 있잖아.
공룡 : 더욱이 넌, 나무를 쪼지도 않고 뇌진탕에 걸릴 위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공룡 : 우린,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그 미래에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나갈 수 있는 다리는 가지고 있지. 하지만 넌 그 ‘다리’까지 부정하며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거라고 근심에 잠겼잖아.
나비잠 : 그것은 ‘공포’야. ‘공포’ 가 만들어 낸...자신에 대한 슬픈…….신뢰지.
딱따구리 : (화를 내며) 너희랑 더 이상 대화 할 필요를 못 느끼겠어!
 
딱따구리는 공룡과 나비잠을 놔두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비잠 : 수많은 딱따구리가 단 한 번도 자신이 뇌진탕에 걸릴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공룡 : 저 어리석은 딱따구리에게 설득당한 거야?
나비잠 : 사실, 딱따구리의 충격 흡수 스펀지 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능력이잖아? 한 번쯤 의심하고 골몰할 수는 있지 않을까?
공룡 : 마르튜스는 ‘경험’이라고 했어.
나비잠 : 경험?
 
공룡 : 저 수많은 딱따구리가 의심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나무를 쪼는 이유는 자신의 부모님, 친구, 친지들이 무사히 나무를 쪼는 것을 봤기 때문이야.
나비잠 : 장난해? 나를 설득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공룡 : 바로 그거야. 우린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기 때문에 결코 딱따구리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저 딱따구리들은 보고, 듣고,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나무를 쪼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거지.
나비잠 : 저들은 누군가에게 설득당한 게 아니고...경험했기 때문에?
 
공룡 : 그래. 그래서 ‘코이노니아’는 필요한 거야. 그것은 단지 친교의 목적을 위해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나눠주는 거지. 그래야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알게 되고 그 목적을 위해 누군가가 자신에게 준 평범하지만 특별한 선물을 이해하게 되는 거야.
 
나비잠 : ‘코이노니아’? 무슨 생선이름 같군.
 
공룡 : 그게 너의 특별한 능력이지.
나비잠 : 뭐가?
공룡 : 모든 외래어를 먹을 것과 연관시켜 무식의 바닥을 알려주는 것.
나비잠 : 너무 감동받지 마. 내 요염한 무식은 아직 시작도 안했거든?
공룡 : 침 튀기지 말고 저리 가!
 
공룡과 나비잠은 티격태격하며 마르튜스의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딱따구리가 뇌진탕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시속 25km로 초당 20회 정도 얼굴을 벽에 박는 것과 같은 충격이다. 미국의 이반 슈왑 박사는 딱따구리가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면서도 두통을 겪지 않는 이유를 규명해 조류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슈왑 박사는 "스펀지 형태의 두꺼운 두개골이 딱따구리의 뇌를 보호해 주는 데다 나무를 쪼기 1000분의 1초 전에 눈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딱따구리는 탄성이 있는 부리, 두개골 후면에서 돌출된 설골(목뿔뼈)이 받쳐주는 근육질의 탄력성이 있는 혀, 두개골 안쪽의 해면질 뼈 부분, 두개골과 뇌를 보호하는 뇌척수액, 이 4가지 주요 해부학적 머리구조가 상호작용하여 진동을 흡수 억제한다는 것이다.
 
딱다구리의 머리에는 뇌 사이에 스펀지 조직으로 충격흡수 장치가 있으며 특수한 근육이 있어 부리로 나무를 쪼는 순간 뇌를 반대방향으로 당겨 충격을 덜 받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어 안전하다. 또한 부리는 다른 새에 비교해 강하고 끝이 끌과 같이 생겨 효율적으로 나무를 쪼아낼 수 있으며 나무를 파낼 때 생기는 먼지가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코는 많은 깃털로 덮여 있다.
 
나무를 쪼아댈 때 딱따구리의 머리가 받는 충격은 중력가속도의 1000배에 이르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그 10분의 1의 충격만 받아도 뇌진탕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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