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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그림

[입다] 어리석은 아버지의 비정한 실수......



아버지, 현실을 부정하지 마세요.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도 이미 당신의 맹세는 하늘에 닿았어요.

당신은 승리에 도취되고 권력에 길들여져
신의 순수한 마음을 읽어내는데 실패했답니다.

신이 바란 것은 순결한 순종이었지만,
당신의 야욕은 점차 짙은 그림자가 되어
신의 언약에 깊은 의구심을 품었답니다.

당신의 불신은 순백한 신과 당신의 관계를 오염시켰고
인간의 탐욕에 밀려 신실한 신에게 불필요한 충성을 제의하셨어요.

신이 부정하고 신이 막으신 일이라도
당신의 공명과 부귀를 위해서라면 한계가 없다는 위선이,
결국 당신의 사랑하는 딸을 제물로 헌사하게 되었군요.

아버지, 현실을 부정하지 마세요.
비록 부족한 딸이라도
신과의 언약은 절대무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연약한 딸은 어리석은 아버지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거부하지 못한 채 제단을 향해가겠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우리 세계 속에 존재하는 신은 변하지 않는 산 같은 분이지
인간의 비약적인 상상 속에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성장하는 물욕이 아님을..

부디 이 사실을, 당신의 비천한 딸의 희생 대가로 영원히 기억해 주세요.

<글. 나비잠>

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길르앗 사람, 입다는 기구한 삶을 산 선지자다. 그는 기생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큰 용사로 자라났고 이 때문에 이복 형제와 다른 가족의 미움을 받고 고향에서 쫒겨났다. 아마도 아버지는 죽었기 때문에 그 재산과 권력으로 일어난 분쟁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서 입다는 돕땅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잡류가 그에게로 와서 큰 무리가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의 잡류가 우리가 생각하는 시시껄렁한 자들이 아니라 입다처럼 능력있지만 버림받은 자들...일종의 혁명가나 의식있는 자들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하여튼 입다의 무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문으로 퍼졌을만큼 강하고 강건한 군대가 됐다.

이 때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그 중 암몬 자손(룻의 이야기_소돔과 고모라를 참고) 의 끊임없는 공격은 이스라엘 민족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길르앗 장로들은 암몬 자손이 자신들을 크게 치려하자 입다에게 가서 자신들을 위해 싸워달라고 요청한다. 입다는 장로들에게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였는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는냐' 하며 물었다.  장로들은 입다에게 다시 싸워 주면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입다는 이때 이렇게 말한다. '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장로들은 증인으로 '여호와'를 불러 입다가 제시한 의견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구절을 읽어보면 입다가 하나님을 몹시 경외하는 사람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삶은 비굴하고 비천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입다는 여호와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갈망했고 언제가 그 갈망이 결실을 이룰거라고 확신했다.

성경에서 나와있지는 않지만 길르앗 장로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들리는 소문으로만 추측하여 입다를 다시 데리고 오려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큰 일을 행할 때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갈구한다. 아마도 길르앗 장로들은 그 기도속에 입다를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입다가 제시한 조건을 거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을 것이다.

입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큰 승리를 이끌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길르앗 장로들과 더불어 싸움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서 보면 입다는 바로 암몬 자손과 싸우지 않고 사자를 보내 평화를 협상했다.  암몬자손은 입다가 보낸 사자를 거절하고 입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승리를 확신한 입다가 싸우려 온 암몬자손에게 평화를 제의했을까?

성경학자는 입다가 바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사자를 보내 명확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은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입다는 하나님의 자손답게 하나님이 주신 땅에 대한 명확한 의분을 전달했고, 이는 입다와 함께 싸움에 임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경각시켰을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명분없는 싸움이 없듯 입다의 '사자'는 정확한 '명분'을 제시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왜 암몬자손과 싸워 이겨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발생했다.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을 했다. '주께서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중요한 것은 이때 하나님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셨다. 이때의 문헌을 보면 우상를 섬기는 많은 민족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말하듯 하나님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셨다. 이삭을 예로 봐도..하나님이 인간을 바치는 행위를 원하시지 않음을 증거하지 않았나? 그런데 입다는...그 힘든 삶속에서 하나님을 버러지 않고 경외하던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서원을 덜컥 한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큰 의문을 갖고 정확한 해석을 내지는 못하지만 많은 추측을 제시하기는 한다. 아마도 입다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인간적인 감정으로 미래를 걱정했을 것이다. 가족이 전부인 씨족사회에서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때문에 비천한 삶을 살았던 자신과 승리만 한다면 모든 명예와 부귀가 따라올 미래 사이에서 한 순간 의심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주님이...이때 내 손을 놓아버리신다면...내 작은 실수로 주님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신다면...주님의 도움이 갑자기 매정한 연인처럼 뒤돌아버리신다면...믿음의 부족이었을까...아니면 인간적인 오해였을까...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영은 입다를 감쌌지만...입다는 한 순간 큰 절망의 선택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자신이 큰 은혜와 믿음이 있다면 유혹은 서슴치 않고 거부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최고의 절정 속에서 유혹은 더욱더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존재는 망각속에 뿌연 안개처럼 희미해지고 자신의 날카로운 판단만 머리속을 헤집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는 그렇게 또 한 번 인간을 후회의 구렁터니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승리했고, 승리한 그를 위해 맨 먼저 달려나온 사람은...바로 그가 사랑하던 무남독녀 딸이었던 것이다.

입다는 딸을 본 순간 어떤 느낌이었을까..그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의 맹세를 저주했을 것이고..자신의 탐욕을 짓밟고 싶었을 것이다. 전쟁후에 끝없이 밀려왔던 삶의 희열은 딸을 보는 순간 조각조각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그의 심장을 후벼팠을 것이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은 아버지의 어리석은 언약으로 제물이 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딸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맹세가 아무리 우매하였더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딸은 아버지께 간구한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행하소서 이는 여오화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 이 일만 애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러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라고...


 



딸은 두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고 그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성경학자들은 이 때 입다의 딸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사제가 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즉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로 바쳐졌을 거라는 것이다. 그 당시 결혼이 여성의 당연한 행복이고... 입다의 유일한 자식으로써 대가 끊겨지게 된 것이... 잘못된 서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았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 이후 입다는 요셉의 자식인 에브라임 민족과 큰 잔혹한 전쟁을 한다. 이는 에브라임 민족의 딴지 걸기에서 시작되었는데 에브라임 민족은 입다가 암몬자손과 전쟁을 할 때에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깐죽거리면서 입다의 민족을 공격하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입다는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지만 그들이 거부했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명을 받들지 않은 그들과 전쟁을 일으킨다. 입다에게 있어..여호와께 있어 주님의 권능으로 이긴 싸움을 비아냥 거리는 그들에게 큰 본을 보이신 것이다.

입다는 이후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년후에 죽는다..

나비잠은 입다를 보며 잘못된 서원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임할때 드린 입다의 서원을 보며....가장 큰 은혜의 순간에도 주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통한 판단력을 결코 쉽게 이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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